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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문화

-이탈리아의 문화

이탈리아의 역사는 지중해 지역 전체의 문화·사회 발달에 끼친 영향을 볼 때 그 중요성이 크다. 이탈리아는 선사 시대에도 중요한 인간 활동의 무대여서 라치오 주, 토스카나, 움브리아, 바실리카타 지역 등 곳곳에서 그 유적이 발견되었다. 고대 그리스 시대와 에트루리아 시대, 특히 여러 세기에 걸쳐 지중해 지역을 지배한 로마 제국은 세계사에 있어서 아주 큰 영향을 미쳤다.

로마 제국 후에는 중세의 인본주의와 르네상스가 유럽의 철학과 예술의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근대 이탈리아는 민족국가로의 발전이 늦어졌는데, 1861년 3월 17일에야 반도 본토의 나라들과 양(兩) 시칠리아 가 당시 피에몬테와 사르데냐 왕이던 사보이 왕가의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의 지배 아래 통일되었다(이탈리아 왕국). 이탈리아 통일의 주역은 총리였던 카보우르였다.

로마는 그 후에도 교황령에 계속 남아 있다가 1870년 9월 20일 이탈리아의 영토가 되었다. 현재 바티칸 시국은 산마리노와 함께 이탈리아에 완전히 둘러싸인 독립 국가이다. 1883년에 아프리카에 진출, 에리트레아를 식민지로 삼았다. 1896년에는 에티오피아와 교전하였으나 실패, 에티오피아의 주권을 인정했다.

제1차 세계대전 초기에는 중립을 선포했으나, 1915년에 연합국에 가담했다. 전쟁은 연합국의 승리로 끝났다. 그러나, 이탈리아는 승전국임에도 불구하고 오스트리아의 티롤지방을 비롯한 아주 일부지역만 얻었을뿐 큰 소득은 얻지 못했다. 국내에서도 자본가와 노동자들의 싸움이 빈번하였으며, 이에 노동자들은 단결하여 자신들의 권리를 위한 계급투쟁을 벌였다.

실례로 1919년 3월에 북이탈리아 공업지대에서 노동자의 공장 운영, 거리투쟁, 생산 관리등의 강력한 행동이 개시되었는데, 이는 남부 농업지역에도 파급되어 노동자층의 계급투쟁이 활발히 진행되었다.[16] 이러한 민중들의 단결을 두려워한 지주, 군벌 등은 로마제국의 영광을 되찾자고 주장하며 국가주의를 내세운 무솔리니의 파시스트당을 지지하였다. 1922년 집권한 베니토 무솔리니의 파쇼 독재정부는 1936년, 에티오피아와 교전하여 승리, 5년동안 이탈리아 영토로 편입했다. 나중에 국제 연맹을 탈퇴하고, 독일과 일본과 동맹을 맺었으나 이 결과, 제2차 세계 대전에 패전했다.

1946년 6월 2일 국민 투표를 통해 군주제가 폐지되고 공화국이 되었으며, 1948년 1월 1일 새 헌법이 제정되었다. 한국전쟁시 대한민국에 의료인들을 지원하기도 하였다. 이탈리아는 북대서양 조약 기구와 유럽 연합의 원년 회원으로 서유럽의 정치·경제적 통일에 동참하였으며 1999년에는 유로를 통화로 도입하였다.

정치

1948년의 헌법에 의해 상하 양원제의 의회(파를라멘토 Parlamento)를 창설했다. 하원은 카메라 데이 데푸타티(Camera dei Deputati), 상원은 세나토 델라 레푸블리카(Senato della Repubblica)로 불린다. 또 독립된 사법부를 두고 있으며 행정부는 총리를 우두머리로 하는 내각으로 이루어져 있다. 대통령은 7년 임기로 의회와 소수의 지역 대의원들에 의해 선출된다. 대통령은 총리를 지명하고 총리는 장관들을 추천하는데 공식적으로는 대통령이 이들을 임명한다. 내각은 원외 전문가출신 일부 장관들과 의원들(대부분)로 구성되어 있으며 상하 양원의 신임(피두차 Fiducia)을 유지해야 한다. 2007년 3월, 162 대 157로 로마노 프로디 총리는 간발의 차로 이(신임)를 유지했다.

의회 의원들은 보통 직선제로 다수제와 비례 대표제가 혼합된 제도에 따라 선출된다. 1993년에 제정된 법령에 따라 의석의 75%는 한명씩 뽑는 선거구를 통해 채워지고 나머지 25%는 정당 비례에 따라 배분된다. 하원에는 630석이 있다. 상원에는 선거로 뽑히는 315석 외에 전 대통령 등 특별 법률에 의해 종신 임기를 받은 의원들도 있다. 상하원 모두 5년마다 선출되지만 둘 다 5년이 채워지기 전에 해산될 수 있다. 법안은 상하원 어디에서나 제출할 수 있으며 상하원 모두에서 과반의 지지를 얻어야 통과된다.

2005년, 잦은 지도체제 교체로 인한 정국혼란을 최소화하고자 새로운 선거방식을 도입하였는데, 진보와 보수 양 진영 중, 단 1표라도 더 얻은 진영은 하원(상원-315석-보다 실권이 더 많으며 총 630석)에서 최소 340석을 보장한다는 내용이다. 2006년 총선거부터 도입되어 전 세계에 화제를 일으켰다.

이탈리아의 사법 제도는 로마 법에 기초를 둬 나폴레옹 법전과 훗날의 법령에 의해 수정된 법체계를 바탕으로 하였다. '코르테 코스티투치오날레'(Corte Costituzionale)라 하는 헌법 심판소는 법의 합헌성을 판결하는데 이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새로 도입되었다.

행정 구역

이 부분의 본문은 이탈리아의 행정 구역입니다.

이탈리아는 20개의 주(regione)로 구성되어 있다.

지리

이탈리아 영토의 대부분은 지중해에 뻗은 커다란 반도와 시칠리아, 사르데냐 이 두 섬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들은 주변 바다를 몇 구역으로 나눈다. 북동쪽으로는 아드리아 해, 남동쪽으로는 이오니아 해, 남서쪽으로는 티레니아 해, 북서쪽으로는 리구리아 해를 형성한다.

이탈리아 반도의 등뼈에 해당하는 아펜니노 산맥은 북서쪽에서 알프스 산맥과 맞닿는다. 알프스 산맥은 곡선을 그리며 이탈리아의 북쪽 경계를 형성한다. 이 지역에는 충적으로 형성된 거대한 포-베네치아 평원이 있어 물은 포 강과 알프스, 아펜니노, 돌로미티 산맥 등에서 흘러내리는 수많은 지류로 흘러든다. 포 강 외에 잘 알려진 강에는 테베레 강, 아디제 강, 아르노 강 등이 있다.

해발 4,810m의 몽블랑 산(이탈리아어로 몬테 비앙코)이 가장 높은 지점이지만 이탈리아 하면 떠오르는 산은 나폴리 근처의 휴화산 베수비오 산과 시칠리아의 활화산 에트나 산 이 두 화산이다.

경제

이탈리아의 경제는 다양화된 산업 경제로 프랑스, 영국과 총생산과 1인당 생산이 비슷하다. 이 자본주의 경제 구조는 아직까지 산업화되고 사유 기업 중심인 북부와 농업 중심으로 발전이 덜 되고 실업률이 20%에 달하는 남부 사이의 불균형을 해소하지 못하고 있다. 서유럽의 인근 나라들과 비교할 때 중소 기업의 수가 많다.

산업에 필요한 대부분의 원자재와 에너지 필요량의 75%는 수입에 의존한다. 지난 10년간 이탈리아는 유럽경제통화연맹의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긴축된 재정 정책을 편 결과 낮은 이율과 물가 상승률에 힘입어 1999년 유로화의 첫 도입 당시부터 이탈리아 역시 유로를 도입할 수 있었다.

이탈리아의 경제 실적은 다른 EU 나라들과 비교해 볼 때 뒤떨어진다. 현 정부는 다수의 단기 개혁을 시도해 경쟁력을 높이고 장기 성장을 도모하려 하나 많은 경제학자들이 지지하는 구조적 개혁, 즉 높은 세율을 낮추는 것, 경직된 노동 시장과 높은 비용이 드는 연금 제도를 재정비하는 것은 밀고 나가지 못하고 있는데, 이는 불경기와 노동 조합들의 반대 때문이다.

농업은 올리브, 포도, 토마토, 밀, 쌀 등의 생산으로 발달하였으며, 포도주의 생산은 프랑스와 맞붙는 편이다. 공업은 북부의 밀라노, 토리노, 제노바 등지를 중심으로 기계, 자동차, 섬유 공업이 발달하였으며, 가난하던 남부에서도 최근에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포 강 유역에는 천연가스를 생산하고 있다. 주요 무역 상대국은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미국 등이다.

인구 통계

이탈리아는 언어와 종교 면에서는 인구가 동질적인데 비해 문화·경제·정치 면에서는 다양하다. 이탈리아의 인구밀도는 1㎢당 196명으로 유럽에서 다섯 번째로 높다. 소수집단도 있는데 가장 큰 소수집단은 남 티롤의 독일어 사용 인구(1991년 통계: 28만 7503명이 독일어 사용, 11만 6914명이 이탈리아어 사용)와 트리에스테와 그 근교의 슬로베니아어 사용 인구이다.

여성 1인당 합계출산율은 2004년 현재 (Eurostat 추정) 1.33명이다. 합계출산율은 1995년 1.18로 바닥을 친 이래 조금씩 회복되고 있다. 2005년 현재 천명당출산율은 9.9명, 천명당사망율은 10.4명이어서 이민을 제외한다면 인구가 감소할 것이다.

민족

이탈리아는 라틴계인 이탈리아인이 주류를 형성하는 국가다. 하지만 북부, 중부, 남부에 따라 인종이 달라지는 편이다. 북부에 갈수록 장신, 금발, 푸른 눈동자의 인종이 많이 보이고, 남부로 갈수록 단신, 짙은 머리털에 검은 눈동자의 인종이 많은 편이다. 하지만, 남부에서 북부로 일거리를 찾으러 많은 이주민들이 늘어나 모두 섞인 편이다. 또 소수 민족으로 유대인과 국경지역에 프랑스인, 오스트리아인, 슬로베니아인이 살고 있다.

문화

주세페 베르디

이탈리아는 문화 예술과 수많은 기념물들로 잘 알려져 있다. 피사의 사탑과 로마의 콜로세움 등의 역사적 건축물과 이탈리아 음식(피자, 파스타 등), 포도주, 생활 양식, 우아함, 디자인, 영화, 연극, 문학, 시, 미술, 음악(특히 오페라), 관광 등은 이탈리아를 세계적 문화국가로 만들었다. 로마, 피렌체, 베네치아는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오는 도시들이다.

유럽의 르네상스 시대는 14세기와 15세기에 이탈리아에서 시작되었다. 페트라르카, 토르콰토 타소, 루도비코 아리오스토의 시와 조반니 보카치오, 니콜로 마키아벨리, 발다사레 카스틸리오네의 산문은 서양 문화의 발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 라파엘로 산티, 산드로 보티첼리, 프라 안젤리코, 미켈란젤로 등의 거장들을 배출한 회화와 조각, 건축 부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현대 미술가로는 조각가 톰마소 제라치가 알려져 있다.

이탈리아의 작곡가 몬테베르디, 팔레스트리나 , 비발디 등은 한 시대를 풍미했고 19세기에는 조아키노 로시니, 주세페 베르디, 자코모 푸치니 등의 작곡가들에 의해 이탈리아의 낭만주의 오페라가 전성기를 구가했다. 현대의 이탈리아 미술가들과 작가, 영화감독, 건축가, 작곡가, 디자이너 등도 오늘날 서양 문화에 크게 이바지하고 있다.

이탈리아에서 가장 인기가 있는 스포츠 종목은 단연 축구로 이탈리아인들의 축구에 대한 광적인 열정은 잘 알려져 있다. 이탈리아는 1934년, 1938년, 1982년, 그리고 최근의 2006년 네 차례에 걸쳐 FIFA 월드컵 우승을 차지한 바 있다.

이탈리아의 성악가 체칠리아 바르톨리, 안드레아 보첼리, 루치아노 파바로티, 레나타 테발디 등이 이탈리아를 빛내고 있다.

종교

옛 로마 제국 때 그리스도교가 국교로 인정되어서 로마 가톨릭교회가 오래토록 역사를 이어오고 있으며, 이탈리아 교회사 자체가 로마 가톨릭교회의 역사와 거의 맥을 같이 한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이탈리아 통일후에도 1929년부터 1978년까지 로마 가톨릭교회가 국교였으며, 이탈리아인의 90% 이상이 가톨릭 신자이다. 그 밖에 유럽교구에 속한 이탈리아 성공회와 여러 개신교(침례교, 감리교 등)도 존재한다.

대한 관계

1956년 대한민국과 수교한 이후 우호적인 관계가 지속되고 있다. 양국에 상주 대사관이 설치되어 있다. 1950년 6.25 한국전쟁 때는 UN군의 일원으로 의료 및 시설지원을 하였다.

대한민국과의 협정체결 현황은 1961년 3월 특허권·상표권 보호에 관한 각서교환, 1965년 3월 무역·문화협정, 1975년 사증 및 사증수수료 면제에 관한 각서 교환, 1982년 5월 경제협력협정에 합의하였다. 이어 1984년 2월 과학 및 기술협력협정, 1989년 1월 투자증진 및 상호보호 협정, 이중과세 및 탈세방지 협약, 2000년 3월 관광협력협정, 2005년 3월 한·이 사회보장협력협정에 합의하였다.

1959년, 이탈리아의 토리노에서 열린 유니버시아드 대회 때, 북한은 이탈리아와 관계를 맺고자 시도했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그후 약 30만 달러 정도의 무역 관계만을 유지했다. 1967년 11월 하순, 북한은 모스크바를 통해 4인조로 구성된 경제사절단이 이탈리아 역사상 처음으로 정식 입국하였고, 1968년 1월 18일, 북한은 이탈리아 로마에 "문화센터"를 창설했다. [17] 2000년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도 수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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